【기고문】 돈달산(遯達山)과 영강(潁江)의 유래(由來)

송고시간 :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12:01

이 지구상(地球上)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事物)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왔다. 지명(地名), 명산(名山), 대천(大川), ·(·), ·식물(·植物), 건물(建物)등 할 것 없이 그 이름은 붙여지고, 이름조차도 다양하다. 그런 까닭에 그 이름에는 고유(固有)한 뜻과 유래(由來)가 있으며, 역사성(歷史性)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름을 지을 때 주로 발음오행(發音五行)이나, 획수오행(劃數五行)의 상생(相生), 상극(相剋)을 기본으로 하여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을 구별하여 짓는다.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人類歷史)에 크게 공헌(貢獻)한 분들의 아호(雅號)나 그 분들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한다.

아무튼, 좋은 이름이 좋은 인생을 만들어주고 영예(榮譽)롭고 수()나 부()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운명적(運命的)으로 믿는 편이기 때문에, 우리는 역리(易理)에 맞는 좋은 이름을 지으려고 애를 쓴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점촌지역의 돈달산(遯達山)과 영강(潁江)의 이름도 예외(例外)가 아니다. 분명 우리 선현(先賢)의 지혜(智慧)가 담겨져 있음을 유추(類推)해 볼 수가 있다. 그럼 옛 문헌(文獻)을 통해서 돈달산(遯達山)과 영강(潁江)의 지명에 대한 유래(由來)를 살펴본다.

1.돈달산(遯達山)

고대(古代) 인류(人類)의 기원(起源)과 문화의 발상지(發祥地)가 대개 산을 배경(背景)으로 하고 물이 흐르며, 들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점촌은 이런 자연 조건(條件)을 갖추고 산업화(産業化)와 함께 빠르게발전한 도시(都市)이다. 우리 고장은 돈달산을 배경으로 하고, 그 산을 감싸고 흐르는 영강과 영강의 물을 막아 축조(築造)한 수정보(水晶洑)는 수 Km에 달할 뿐만 아니라, 이 수정보를 이용한 관개(灌漑) 수혜 몽리(蒙利) 면적도 무려 3-4천 두락(斗落:70만평)이라는 큰 들이 조성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농경역사상(農耕歷史上) 대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여건이 곧 다른 지역보다는 빠른 성장(成長)을 유도할 수 있는 지리적(地理的) 장점(長点)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돈달산은 전국에 널리 알려진 명산(名山)은 아닐지라도 우리 시민에게는 오랜 삶의 역사와 함께 애틋한 정서가 담겨져 있는 점촌의 배산(背山)이기도 하다.

돈달산은 지금부터 약 400년전인 1610년경에 태촌(泰村) 고상안1) (高商顔)의 태촌문집(泰村文集) 남석정기2) (南石亭記)상산3) (商山) 북쪽 수십리쯤에 한 산록(山麓)이 있고, 들이 펼쳐진 곳에 가파른 산이 있으니 이를 돈달산이다.”라고 했다.

이 내용은 우리 고장의 역사서(歷史書)인 문경지(聞慶誌), 상산지(商山誌), 함창지(咸昌誌), 예천지(醴泉誌) 등에서는 그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는 중요한 문헌(文獻)이다.

또 남석정기 말미(末尾)에 보면 상산(商山), 영수4) (潁水)는 옛 선인(仙人)의 은류지소5) (隱類之所)”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돈달산이란 이름은 분명히 선경(仙境)으로 일컫는 중국의 기산6) (箕山),영수(潁水)에 견주어서 현인(賢人), 달사(達士)들의 은거지(隱居地)로 보고 산 이름을 돈달(遯達)”로 지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2.영강(潁江)

멀리 돈달산(遯達山)을 휘감고 굽이쳐 흐르는 영강(潁江)은 남석정기(南石亭記)물의 발원(發源)은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峯)에서, 보은(報恩), 문경(聞慶)의 백여리를 두루 돌아서 돈산7) (遯山)을 둥글게 안고 흐르는 강을 영강(潁江)이다라고 했다.

이는 바로 영강의 유래가 선계(仙界)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기산영수(箕山潁水)의 고전에서 그 역사성(歷史性)을 찾을수 있다.

고대 중국의 요()임금이 임금의 자리를 덕망(德望)이 있는 현사(賢士), 허유8) (許由)에게 물려주려는 뜻을 전하자 이 말을 들은 허유는 영수천변(潁水川邊)에서 귀를 씻고 기산(箕山)속으로 들어가 속세(俗世)를 등지고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살았다는 고사가 있다. 비록 고전(古傳)이지만, 허유가 귀를 씻을 때 마침 영천(潁川)가에서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던 허유의 친구 소부9) (巢父)는 불연 듯 내 어찌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송아지에게 먹일수 있겠는가하고 기산으로 들어가 은거(隱居)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영강(潁江)의 이름은 영수,은사(潁水,隱士), 허유(許由), 소부(巢父)의 고사에 근거(根據)한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의 남석정기문(南石亭記文)에 처음 명명(命名)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남석정기문보다 약 200년 앞선 조선조(朝鮮朝) 세종(世宗) 7(1425)에 간행(刊行)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상주도(尙州道) 영순현10) (永順縣)편에 보면, 영순현 동쪽 가까운 대천(大川)을 관()(串川)11) 이라고 한 기록이 있는데, 이 관천이란 지리적 주변 상황으로 보아 지금의 영강을 의미하는 것 같으나 그 이후는 어떤 문헌(文獻)에서도 관천이라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 고장의 영강(潁江)과 돈달산(遯達山)은 은사지지(隱士之地)라는 중국의 기산·영수(箕山·潁水)에 견주어서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을 알수 있으며, 또한 우리 고장의 대표성(代表性)과 함께 시민생활(市民生活)의 터전이 되고 있다. 영강과 돈달산은 그 유래와 역사성(歷史性)으로 볼 때 우리에게는 뿌듯한 긍지(矜持)와 또한 자부심(自負心)을 느끼게 한다.

한때 영강(潁江)의 영()자가 ”, “?穎 자 등으로 잘못 쓰여지고 또한 돈달산(遯達山)자 마저도 뜻과 음을 숨을 돈(陰也:숨는다는 뜻)”이 아닌 달아날 돈(또는 둔)”으로 자의적(自意的)으로 해석하고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의미를 부여하여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한 적이 있어 정말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영강(潁江)의 유래(由來)는 이미 1984년 영강문화(潁江文化,발행인:전규홍)창간호에서 영강문화 제호와 함께 밝힌바 있었다. 이제 다시 우리고장의 대표적 지명을 고찰(考察)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어쩌면 내 고장 역사를 바르게 앎이 곧 고향사랑의 밑거름이라고 믿고 비록 미흡하지만 영강과 돈달산의 유래와 역사성을 문헌(文獻)을 통해 밝혀 두고자 한다.

문경유림단체협의회장(聞慶儒林團體協議會長) 고영조(高榮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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