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 이강년 선생 순국 110주기 향사 봉행

기자 : 김수경 | 송고시간 :2018년 9월 12일 수요일 11:01


영원한 의병대장으로 일컬어지는 문경이 낳은 위대한 인물 도체찰사 도창의대장 운강 이강년(雲岡 李康秊) 선생 순국 110주기 향사가 지난 910일 가은읍 완장리에 있는 의충사(義忠祠)에서 지역유림과 후손,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및 운강 이강년선생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시민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경향교(전교 이동진) 주관으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봉행 되어 선생의 유덕을 기렸다.

이날 향사에 초헌관에는 고윤환 문경시장, 아헌관에는 김인호 문경시의회의장, 종헌관에는 후손 이순규씨가 헌작하고, 집례는 유학 전홍석씨가 축은 유학 김기동씨가, 제집사에는 문경향교 장의들이 맡았다.

운강 선생은 전주이씨 효령대군 18대손으로 1858(철종 9) 가은 완장에서 이기태(李起台)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 선전관 등 잠시 벼슬도 하였으나, 국운이 기울자 사퇴하고 문경으로 내려와 가산을 털어 18961월 의병을 일으켜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 3인을 체포해 농암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했다.

이어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 되어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 · 평천 · 조령 · 영춘 · 충주 등지에서 활약하였으며, 1907년 봄에 의병을 다시 크게 일으켜 제천 · 싸릿재 · 고리평 · 백자동에서 큰 전과를 올렸고 특히 83일 갈평대첩으로 적을 섬멸했다.

12월에는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전국의 의병들이 양주에 집결해 13도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할 때 호서창의대장으로 참석하였으나, 서울진격작전이 미수에 그치자 1908년 용소동전투 · 갈기동전투 · 백담사전투 · 안동서벽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강년 부대는 지리에 밝고 또 엄격한 군율로 기강이 서 있어서 지방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한 의병세력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0864일 청풍 작성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결전에서 발목에 총알을 맞고 일본군에게 붙잡혀 919(10.13) 독립운동가중 맨 처음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저서로는 운강선생문집(雲崗先生文集)이 있고, 또 그 제자와 의병시절의 부하들에 의해 엮어진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이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묘소는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산8번지에, 사당인 의충사는 운강 이강년 선생 기념관과 함께 문경시 가은읍 대야로1683(완장리)에 있으며 매년 910일 문경향교 주관으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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