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역사문화기행 - 53】

시민이 공감하는 문경의 문화예술 정책
송고시간 : 2017-10-24 오전 9:01:06

유럽 여행을 해 봤다면 누구나 한번 쯤 느껴봤을 것이다. 길거리 마다 악기 연주와 모노 연극, 모자하나 앞에 두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노천카페에선 선글라스를 끼고 여럿이 둘러앉아 즐겁게 차를 마시고, 둘러보는 곳 마다 그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이나 많은 오래된 중세풍의 돌로 된 건축물들, 그러나 이것이 유럽문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런 것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네들의 독특하다고 여길 만큼의 여유로운 삶의 모습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광장에는 반드시 조각상 하나쯤 서있고, 모퉁이를 돌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도시 숲, 도로 곳곳에 예술인들의 숨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유적(遺跡)과 저녁엔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은은한 조명, 오페라 극장 앞에 북적북적한 사람들, 이 또한 유럽의 흔한 일상을 둘러보는 느낌이 아닐까?

우리는 한때 유럽과 우리 문화를 비교하는 말 중에 영화를 보러가기 위해서는 극장엘 가고 오페라 관람을 위해서는 예술의 전당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었다.

극장은 동네마다 하나씩 있지만(지역에서는 이마저도 사라진지 오래지만) 예술의 전당은 한 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가 예술정책이 빛을 본 결과이겠지만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는 대도시의 경우 전문 공간이 생기고 있어 그나마 문화와 예술의 혜택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도 그나마 대도시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중소도시 또는 소도시에서는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인가?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크고 번듯한 건물이 있어야만 문화와 예술이 진흥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역민의 문화예술 활동과 의지가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유럽이 가진 외형적 조건을 마냥 부러워 한다기 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향유와 창조정신이 그저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결국 이런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조바심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사람의 일생도 습관 하나를 만들고, 고치기 위해 수십 년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일진대 하물며 한 국가의 대사가 그저 몇 년 만에 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구 선생(1876~1949)도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에 대해 일관되게 주장한 바가 있다.

백범일지마지막장 나의 소원중에 세상의 그 어떤 문장보다 아름답고 힘이 있는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이글을 통해 김구 선생은 문화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기를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이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민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다라고 했다.

이 글의 위대함은 당연하지만 김구 선생이 이 글을 쓴 시기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 글이 쓰여 진 때는 시기적으로 1947년이다. 이때는 남북으로 갈라져 이념적으로 극렬하게 대립이 될 시기였고 남쪽에서도 좌, 우익 세력의 충돌과 트루먼의 독트린이 발표되기도 한 어지러운 해였다.

이러한 시기에 어느 누구가 심적으로 여유가 있었겠는가? 더구나 국가의 지도자 위치에 있으면서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생각과 마음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문화와 예술은 그 사회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활양식의 모든 문화이고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구선생은 시대를 앞서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고 또한 문화의 시대가 올 것을 마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문화는 비단 김구 선생의 소원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문화의 강국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국민 누구나 하리라 본다. 적어도 문화와 예술에서 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민족도 수천 년을 신분적 차별로 고통 받아 오다 평등한 관계가 된지 1세기 남짓인데 그 수많은 세월 속에 우리가 지금까지의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문화로서 강국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국가의 문화와 예술은 국민의 생활수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비단 근대화시기를 논하지 않더라도 국가 발전시기에 문화와 예술은 절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예술을 총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정책1) 의 핵심은 예술진흥기반의 체계적인 구축과 예술창작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전통예술의 원형보존과 대중화로 활성화 기반을 구축함과 동시에 국민의 문화예술 역량 강화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에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가의 정책이 일관되게 적용되면 좋겠지만 예술은 그 특성상 지역마다의 여건과 활동하는 예술인의 역량이 다르다 보니 국가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엇박자가 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의 힘을 기르고 예술의 시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장기적인 비전이 제시되고 구체적인 실현방안이 만들어져야 만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들고 각 지자체별로 공모를 통해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몇몇 관심과 여건이 되는 지자체에만 돌아가는 사업이어서 골고루 혜택을 받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지자체별로 공모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기반이 없는 곳은 지원자체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부분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각 지자체별로 실정에 맞는 장기 비전과 정책을 세워야 한다. 물론 국가의 정책에 부합되도록 하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문경의 예술정책은 어떠한가? 현재 문경은 그 어느 때보다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문경은 한국전쟁이후 본격적으로 석탄생산을 시작하여 지난 90년대 초까지 광산을 가행한 우리나라 제2의 탄전지대였다.

한때 40여 곳이 넘는 광산이 가행되었으며 70년대에는 15만명이 훨씬 넘는 인구가 이곳에 살았었다. 이때는 전국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논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고 더구나 주된 산업이 석탄산업 이었던 문경의 경우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더욱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할 수 있다.

그나마 마을마다 있었던 별신굿과 동제, 풍물은 새마을 운동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급기야 90년대 후반부터는 사라진 옛 문화를 복원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나마 1974년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해 보자는 의미에서 영강문화제를 매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1998년 제24회 부터는 문경문화제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1995년 향토민요대회를 통해 우리의 전통노래를 발굴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문경새재아리랑을 활성활 시킬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1976년 창립된 백화문학은 우리나라 문단 중진인 김시종 시인이 발기하고, 이듬해부터 발간하기 시작해 1년에 두 차례를 발간하는 등 한 해도 그르지 않고 40년 이상을 이어온 역사 깊은 지역 문학기관지다.

또한 전국 250여개 지자체중 80곳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합창단이 1987년에 태동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던 일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더해 전국에서 몇 곳 되지 않는 어린이 무용단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 예술인들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비록 어려운 시기였지만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해 왔으며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 왔음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해오기까지 예술인들의 남모르는 노력이 얼마나 많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무슨 일이든지 발전단계에서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본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노력과 고통 없이 이루어진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모두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곡의 세월 속에 우리 문화를 지키고 예술을 발전시킨 공로를 제대로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문경문화예술에 대한 실행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좀 더 빨리 문경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발굴했다면 인근 지역 안동의 정신문화의 수도”, 영주의 선비문화도시, 예천의 충효의 고장, 칠곡의 호국의 고장처럼 정체성 확립을 통해 지역발전에 큰 견인차 역할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처럼 문화의 세기가 도래했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 버렸다. 왜냐면 지금은 누가뭐래도 문화와 예술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문경의 실정에 맞는 문화와 예술의 새로운 전략지도를 그리는 것이 미래를 위해 큰 주춧돌을 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경시청 문화예술과 문화재관리담당 엄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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